제3장 영광 안으로의 노정(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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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광주리 가득히

 

제3장 영광 안으로의 노정(2)

대전교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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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영광 안으로의 노정(2)

 

이 길에서 어떤 일을 만나는지를 하나하나 보기로 하자.

그들이 가서...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으나, 그 마을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 길이었기 때문이다.”(9:52-53). 사마리아인이 주님을 받아 들이지 않은 유일한 원인은 주님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셨기 때문이다. 언제든지 당신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십자가의 길을 가고자 할 때 사람들은 당신을 받아 들이지 않는다. 우리는 하루하루 갈수록 더욱 그분의 뜻을 원하도록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 이것은 사람에게 환대를 받지 않을 수 있으나 주님은 아신다.

 

누가복음 1711절부터 19절까지는 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촌에 들어가서 문둥병자 열 명을 고치신 것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이 길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응당 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우리는 이 길에서 응당 힘을 다하여 복음을 전하거나, 사람을 돕거나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일을 해야 한다. 주님은 예루살렘으로 갈 것을 정확히 보셨지만 그 길에서 만난 일을 다 하셨다. 주님은 예루살렘으로 가시기 때문에 모든 일에 후퇴하거나 기피하지 않으셨다. 우리가 들림받기를 기다리는 것은 옳은 일이지만 또한 마땅히 이 길에서 힘을 다하여 사람을 구원해야 한다. 만약 주님이 이 길에서 문둥병자 열 명을 고치셨기 때문에 예루살렘에 가지 않고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면 사마리아의 모든 문둥병자를 치료할 수는 있으나 우리를 다 구원하실 수 없으셨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응당 사람을 주님께 이끌고 사람을 도와야 하지만 그러한 일들이 하나님의 뜻을 좇제3장 영광 안으로의 노정(2)


이 길에서 어떤 일을 만나는지를 하나하나 보기로 하자.
 


“그들이 가서...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으나, 그 마을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 길이었기 때문이다.”(눅 9:52-53). 사마리아인이 주님을 받아 들이지 않은 유일한 원인은 주님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셨기 때문이다. 언제든지 당신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십자가의 길을 가고자 할 때 사람들은 당신을 받아 들이지 않는다. 우리는 하루하루 갈수록 더욱 그분의 뜻을 원하도록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 이것은 사람에게 환대를 받지 않을 수 있으나 주님은 아신다.


 누가복음 17장 11절부터 19절까지는 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촌에 들어가서 문둥병자 열 명을 고치신 것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이 길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응당 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우리는 이 길에서 응당 힘을 다하여 복음을 전하거나, 사람을 돕거나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일을 해야 한다. 주님은 예루살렘으로 갈 것을 정확히 보셨지만 그 길에서 만난 일을 다 하셨다. 주님은 예루살렘으로 가시기 때문에 모든 일에 후퇴하거나 기피하지 않으셨다. 우리가 들림받기를 기다리는 것은 옳은 일이지만 또한 마땅히 이 길에서 힘을 다하여 사람을 구원해야 한다. 만약 주님이 이 길에서 문둥병자 열 명을 고치셨기 때문에 예루살렘에 가지 않고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면 사마리아의 모든 문둥병자를 치료할 수는 있으나 우리를 다 구원하실 수 없으셨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응당 사람을 주님께 이끌고 사람을 도와야 하지만 그러한 일들이 하나님의 뜻을 좇는 데 방해가 된다면 하지 말아야 한다
. 이러한 일들은 단지 이 길을 지나가면서 할 수 있을 뿐이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한쪽으로 데려가셔서 말씀하셨다. '보십시오,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18:31). 주님은 내가 가노니라고 하시지 않고 우리가 올라가고라고 하셨다. 십자가의 길을 홀로 가는 것은 충분치 않다. 우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좇고 십자가를 지고 앞으로 나가도록 권면하고 이끌어야 한다. 우리는 들림받기를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가? 우리가 주님의 다시오심을 말하는 것과 기다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신조에 따라 그분의 다시오심을 믿으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강림하심를 기다리라고 하셨다. 교회는 응당 하나님이 정하신 모든 것을 체험해야 한다.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비유를 하나 더 드셔서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시니, 사람들은 하나님의 왕국이 당장 나타날 줄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귀족 출신의 어떤 사람이 왕위를 받아 오려고 먼 나라로 가게 되었는데,”(19:11-12). 먼 나라로 간다는 것은 승천하신다는 뜻이다. 주님이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왕국이 강림하고 주님이 그 왕국에서 왕 노릇 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가서 축복을 누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주님은 그들이 고난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왕 노릇 하리라고 생각했지만,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리라고 말씀하셨다. 부활과 들림받음 전에 먼저 무거운 십자가의 기간을 거쳐야 한다.

 

형제들이여, 변화산은 무엇인가? 변화산은 영광, 곧 부활과 승천 후의 영광이다. 그러나 변화산은 영광을 뜻할 뿐 아니라 하나의 계시요, 이상(異象)이요, 분명한 견식(見識)이다. 변화산은 영광 안으로 들어가는 노정이 반드시 예루살렘을 통과해야 함을 계시한다. 우리에게는 변화산의 계시와 이상과 견식이 필요하다. 이것은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지 않고는 들림받기를 바랄 수 없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장래의 영광만을 알고, 영광 안에 들어가는 길에 대한 계시를 얻지 못하면 아무 소용 없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 영적인 이상을 주사, 들림받는 것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의 관계를 참으로 알게 하시기 바란다. 또한 이러한 견식을 가진 후, 죽기까지 십자가를 지고 충실히 따라갈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주님과 같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방향을 조금도 바꾸지 않고 갈 수 있기를 바란다. 바울과 같이 우리도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리지 아니하고”(26:19)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영광은 다가오지만, 먼저 십자가를 거쳐야 한다. 들림받을 날이 가까워 오지만, 하나님의 뜻을 좇고 하나님을 순종하라는 부르심이 있다. 이것이 주님이 하늘로 올리우심을 받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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